행복의 기준(2015년 11월 29일 주일설교)잠17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01 02:41
조회
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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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보는 이유?
남자가 살다가 너무 힘이 들면 지갑에 있는 아내의 사진을 본답니다. 왜 볼까요?
“내가 이 사람과도 살고 있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있겠나?”
여자도 살다가 힘이 들면 지갑에 있는 남편 사진을 꺼내 본답니다.
“내가 이것도 사람만들었는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제 지갑에는 카드만 들어 있습니다.

*모두 행복하려고 삽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삽니다. 당신의 가정은 행복하신가요?

*행복의 기준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3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사람들은 행복하려고 삽니다.
페이스북을 보면, 온갖 행복한 이야기뿐입니다. 얼마 전에 제 친구들 중에 하나가, 자기 아들 성적표를 떡하니 사진찍어서 올려놨습니다. 강남에 아주 좋은 학교에서 전교 2등을 했더라구요. 다들 부럽다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다른 친구 하나가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고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 다들 부럽다고 답글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큰 아들에게 공부 똑바로 하라고 혼을 냈습니다. 저만 그랬을까요?

*온라인을 보면, 불행해지는 증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일만 보여주려고 하니까 그래요. 행복한 글만 올립니다. 그래서 온라인의 글들을 보면,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해 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라인 우울증입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멘.

*제육이 무엇일까요?
제육볶음을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돼지고기 볶음이구요.
제사 때 쓴 고기가 제육입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러 갈 때, 짐승을 가져가서 제사드리지 않습니까?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 태워서 드리는 몫이 있고, 제사장들이 받는 몫이 있고, 그리고 남은 고기는 제사드리러 온 사람이 집에 가져갑니다.
이런 제사는 감사제나 화목제입니다.

*제사 때 사용하고 남은 고기가 넘치는 집입니다.
이런 집은 부잣집입니다. 부자여야지, 제물을 큰 것 바쳐서, 고기를 가득하게 받아오죠. 가난한 서민들은 비둘기를 바치는데, 비둘기는 남는 것도 없습니다.

*제육이 집에 가득한 이유가 뭘까요?
제사드리고 난 고기는 가족들끼리 먹고, 이웃들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냉장고가 없는 사막지대입니다. 고기가 쉽게 상하죠. 그래서 나눌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집은 안 나누고 있습니다. 나누지 않고, 다투고 있습니다. 왜 다툴까요? 누가 더 많이 가져가느냐? 이것으로 다투고 있는 겁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다투며 사는 것보다 없어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낫습니다.

▶*롯데그룹사건
아버지와 아들들이 회사를 누가 물려 받느냐? 이 일로 서로 다투고, 형제간에 얼굴도 안 보고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일이 롯데에만 벌어진 일입니까? 수많은 대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아닙니까?
돈많으면? = 싸움 난다!

*물론 마른 떡이 있어야 화목하냐?
제육을 먹으면서도 화목할 수 있지 않나?
물론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 욕심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돈이 많을 수록 그 욕심은 더 커집니다. 그래서 없는 집 아이들이 더 형제우애가 좋은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장례식 때, 싸움.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자식들이 싸우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없는 집에서는 싸울 일도 없습니다. 보통 부잣집에 유산이 많은 집에 싸움이 납니다. 자기 몫을 더 많이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산 남기고 죽는 부자가 제일 어리석은 부자라고 하는 겁니다.

▶*형제투금
고려 공민왕 때 일입니다. 가난한 두 형제가 길을 가던 중에 동생이 금덩어리를 두개 주었습니다. 동생이 형에게 사이 좋게 금덩어리를 하나 나눠주고, 자기도 하나를 가졌습니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서, 서울 양천구로 들어오다가, 갑자기 동생이 금덩이를 물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놀란 형이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원래 형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금을 보면서 아까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형이 없었으면, 저 금덩어리도 내 것이 되었을 텐데...“라는 원망이 생겼습니다. 이런 제 자신이 싫어서 금을 던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형도 자기 금덩어리를 물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아우야... 나도 너와 똑같은 생각을 했단다. 우리가 언제 금덩어리 갖고 살았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았지만, 아무도 이 형제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상에 저런 멍청한 놈들이 있나?’라고 해서 랍니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돈을 삶의 목표로 하고 삽니다. 그러나 앞에서 보신 예처럼, 그렇게 큰 기업 만들어서, 자식들이 돈때문에 싸우는 것 보고 싶으십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돈의 종으로 삽니다. 그러면 불행해 집니다. 돈의 종이 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마른 떡으로 만족하라.

▶잠17:1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진수성찬을 가득히 차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보다 낫다. 아멘.

*마른 빵 한 조각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마른 빵 드셔 보셨습니까? 미국 바게트빵 며칠 뒀다가 드셔보세요. 그게 마른 빵입니다. 이빨이 안 들어 갑니다. 이거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화나지요. 정말 불행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지만, 머리는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식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천국은 갈 수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편한겁니다.
돈이 많으면 비행기 타고 가고
없으면 버스타고 가는 겁니다.
가는 방법이 바뀐 것이지, 목적지가 바뀐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돈 많은 것을 행복으로 착각하고 삽니다.
돈이 많으면, 편해집니다. 그러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마른 떡으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마른 떡을 즐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먹는 것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행복의 기준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가 아닙니다.
어떤 관계냐? 이게 더 중요한 겁니다.

*더 좋은 것을 갖겠다는 욕심만 내려 놓으면 됩니다.
더 좋은 차 타고, 더 좋은 집 같고, 더 좋은 것 먹을 생각각 하지 않고, 우리 행복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른 떡이나, 제육이나 화장실 가면 똑같습니다.
마른 떡이라도 같이 나눌 가족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른 떡이라도 만족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먹을 수 있는 힘을 주셨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 나 하늘나라”
이 믿음을 갖고 사십시오.

▶마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아멘.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숨이 있는 것이 더 중요하고, 아직도 옷을 입을 몸이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을 바꾸세요.
돈 얼마 벌어서, 뭘 하겠다는 행복보다, 나에게 계신 하나님.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 내가 살아 있는 것. 나에게 있는 가족들로 인해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가족과 함께 고통을 나누라.

▶*국제시장 영화의 대사 중에서...
월남에 간 주인공이 간신히 살아 남아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고생을 하지만, 참 다행인 것은, 내 자식이 625전쟁을 않았고, 내 자식이 독일 탄광에서 이 고생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지 않나? 이 고생을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낫지, 어떻게 자식에게 이 고생을 시키나?’
우리 부모님들이 이렇게 고생하시면서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고생은 가족이 같이 나눠서 해야 합니다. 고생을 통해서 배우는 분명한 교훈이 있기때문입니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 아멘.

▶*고통을 가족과 나눠야 합니다.
고통이 있어야 좋은 은이 되고, 고통이 있어야 순금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이 없으면, 사람의 고집은 바뀌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들 뒤에는 그 훌륭함 이상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
4달 동안 훈련소에서 열심히 훈련받았습니다. 같이 받을 쓰던 친구 중에 불평이 아주 많은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늘 불평이 입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는 큰 불평없이 잘 지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도 했고, 저는 그게 훈련인 것을 알았고, 훈련은 성실하게 잘 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은, 제가 허리에 병이 있었는데, 훈련소에서 깨끗하게 고쳤습니다.
아마 제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병을 앓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훈련은 잘 받으면, 큰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우리 가족을 연단하십니다. 그 목적을 알 수는 없지만, 헛된 고통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어 정금같이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2세 아이들의 특징.
실패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패할 만한 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부모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죽도록 고생하니, 너는 실패하지 마라.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고생은 내가 하겠다. 과도한 기대를 걸고 있으니, 2세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미안해서, 실패할 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성공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실패를 통해서 배웁니다.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
미국와서 제대로 목회를 해본 곳이 없습니다. 두 아들을 먹여살리려고, 건물청소일을 하셨습니다. 밤에 들어가서 건물 청소를 다 하고 나오면 새벽 5시가 된답니다. 아이들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 2시까지 같이 청소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새벽 2시에 집에 와서 잠 자고 학교 가면 학교에서 좁니다. 그래도 이 목사님은 꼭 자기 자식들과 같이 청소를 하셨습니다.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자식들이 알아야 한다. 이것보다 큰 교육은 없다.’하셨습니다.
큰 아들은 하버드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프린스톤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이 목사님이 동네 목사님들에게 간증을 하셨습니다.
‘제가 변변하게 목회도 못한 것 여러분들도 아시죠. 이민자들은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자식들에게 숨깁니다. 더 좋은 것만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가족들과 같이 고통을 나누십시오.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면, 개고생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그 고통은 나를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족들과, 혹은 믿음의 가족인, 우리 교인들과 같이,
고통을 같이 짊어지세요. 그 고통이 덜해집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 내가 더 큰 사람이 됩니다.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