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벗은 사람(2016년 2월 28일 주일설교)행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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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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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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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과 같은 사람. 심주일
인민군 정보장교로 중좌. 중령까지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북한의 90년대 말 고난의행군으로 30만명이 굶어 죽었다고 하죠. 그 때, 이 분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친구가 몰래 준 성경을 읽으며, 김일성주체사상은 틀렸고,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밤마다 이불 속에서 단파라디오로 기독교방송을 듣다가, 가족들 모두 놔두고 탈북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분이 이렇게 고백하더라고요. “네레 남조선에 자동차 많고, 빌딩 많아서 탈북한 것 아니야요. 남조선에 하나님이 계셔서 탈북했습네다.”
이분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탈북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 지 모릅니다. 지금은 탈북자교회를 담임하고 계십니다. 이분들은 통일만 되면, 복음들고 북한으로 들어갈 각오를 하고 사시는 분들입니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 지 모릅니다. 예수믿는 사람 잡아내는 정치부 장교를 목사로 만드셔서 복음을 전하실 계획을 어떻게 하셨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사건이 오늘 나옵니다. 사울의 변화입니다.

▶1/3 하나님의 은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서 전도하시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수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전도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수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유대교인들은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행9: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아멘.

*유대교의 젊은 지도자 사울은 대제사장에게 찾아가서 기독교인들이 들어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는 것을 알리고, 다카스쿠스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으러 가기 위해서, 대제사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습니다.

▶지도*다마스쿠스는 지금 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시리아에 계속되는 내전으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로 그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가는데, 여기가 다른 나라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협조공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다른 나라에 가서 다른 나라 백성을 잡아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행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아멘.

*갑자기 하늘의 환한 빛이 사울만을 둘러 쌌습니다.
강한 빛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던 사울은 자리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만납니다.

▶행9:5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아멘.

*예수님을 만나고, 사울은 앞을 못보는 맹인이 되어버립니다. 멀쩡한 청년이 하루 아침에 앞을 못보게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서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충격으로 3일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못하고 기도만 합니다.

*좌절
얼마나 그 고통이 컸을까요? 멀쩡한 청년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 두려운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믿었던 하나님, 그리고 이단이라고 확신했던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충격에 그는 3일동안 기도만 합니다.

▶*칼빈의 5대강령이 있습니다.
그 중에 불가항력적 은혜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먹으시면 사람이 피할 방법이 없다... 라는 교리입니다. 우리 장로교는 이 교리를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다니려고 작정해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완전히.

*사울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여기에 사울의 의지가 있었나요? 사울의 인생을 사울이 계획했습니까? 사울이 자기 인생이 이렇게 될 것을 알았습니까?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그 길로 이끄셨습니다. 도망도 못하게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예수님의 일꾼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셨습니까?
나름 설명이 있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내립니다.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해서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망도 못가게 붙잡아 매셔서 일하신 것입니다. 도망갈 수 없습니다. 거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 모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도 은혜장로교회입니다.
내가 버린다고 버릴 수 있는 믿음도 아닙니다. 아무 잘난 것도 없는 죄인을 일꾼으로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아나니아의 순종을 본 받으라.

*한편 그 시간 다마스쿠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행9: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멘.

*예수님의 제자였던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체포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사울이 눈이 멀어서, 볼 수 없으니, 가서 기도해주고 눈을 뜨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일단 순종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행9:13 아나니아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를, 나는 많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9: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잡아 갈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아멘.

*아나니아는 거부합니다.
주님. 그 사람이 얼마나 악질입니까? 그 사람이 눈이 멀었으면, 감사할 일이지요. 왜 그 사람의 눈을 내가 뜨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이 눈을 떠서 나를 보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아갈 것 아닙니까? 주님. 이건 너무 심한 명령이 아닙니까? 이 명령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눈은 저절로 뜨게 하실 능력이 없으셨습니까?
왜 아나니아에게 가서 기도해서 눈을 뜨게 하라는 것입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아나니아에게 문제가 있었기때문에, 예수님께서 친히 자기의 손으로 기도해서 낫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나니아의 손으로 기도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아나니아의 마음에는 미움이 있었습니다.
박해를 피해서, 다마스쿠스까지 도망 온 슬픔이 있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 저 사람은 절대 구원받지 못할 사람... 편견이 그의 믿음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새가족초정잔치. 부활절.
우리는 스스로 전도할 사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순종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께 그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 편견을 갖고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아나니아의 순종을 통해서, 사울을 변화시키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3 눈의 비늘을 벗기라.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위해서 아나니아와의 만남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만남의 축복입니다. 사울과 아나니아와 같은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행9: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아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혹시 이 비늘이 눈꼽이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3일동안 눈꼽을 안 떼서 앞을 못 볼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비늘같은 것이 눈을 가리고 있어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늘이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콩깍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라고 합니다. 보통 이러면, 보이는 것이 없어서, 남들이 다 반대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죠. 지금도 저 콩깍지때문에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한숨을 쉬시는 분이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그 콩깍지 덕분에 결혼해서 사신다는 것을 또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저부터가 콩깍지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콩깍지의 피해자가 아니라, 콩깍지의 수혜자임을 명심해야.

*눈에 무엇인가 가리고 있으면,
안 좋은 것은 안 보이고, 무조건 좋게 만 보입니다.
반대로 눈에 무엇인가 가리고 있으면, 좋은 것은 안보이고, 모든 것이 나쁘게만 보입니다. 이런 것을 편견이라고 하죠.

*우리 모두가 3마리의 개를 키우고 산답니다.
선입견, 편견, 꼴불견.
이 3마리의 개때문에, 우리가 개가 된다... 라고 합니다. 얼른 이 3마리 개를 갖다 버리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함석헌 선생의 선입견
민족학교였던 오산학교에서 가르치셨던 함석헌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서슬퍼런 일제시대때, 함석헌선생님은 목숨을 걸고 우리 민족정신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함선생님이 맘에 들지 않았던 학생들 몇명이 선생님을 찾아가서, 두들겨 팼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학생들의 매를 맞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학생들은 감동했고, 얼마 뒤 그 학생들이 선생님을 찾아가서, 무릎꿇고 자기의 잘못을 빌었다고 합니다. 그때 학생 하나가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때릴 때, 선생님은 제 주먹을 막으시지 않고, 선생님의 눈을 가리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함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들에게 매맞는 것이 뭐 별 일이냐? 그런데 내가 마음에 수양이 덜 되어서, 예수님처럼 너그럽지 못하다. 내가 네 얼굴을 보면, 그 다음에 너를 대할 때, 미움이 있을까봐 그게 걱정이 되어서, 내 눈을 가리고 네 매를 맞았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한경직목사님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잘 나가던, 앞길이 창창한 유대교의 젊은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잘못된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눈에 끼인 비늘때문에,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일에 가담을 했습니다. 그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여전히 그는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 열심이 있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지 못했던 예수님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울덕분에,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제 꿈은 돈많이 버는 것이었습니다. 뭘 하고 싶다기보다, 가난한 것이 너무 싫어서 돈을 맘껏 벌어보고 싶었습니다. 군대도 돈 많이 주는 장교로 다녀왔고, 회사를 갈 때도 무조건 돈 많이 주는 회사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게 비늘은 돈이었습니다. 제 눈에서 돈의 비늘이 벗겨지고 나서, 저는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배고픈 직업이라는 목사가 되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나니아의 눈에 있는 영적 비늘을 벗기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데, 사울만은 사랑하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고집하던, 아나니아의 눈에서 비늘을 벗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는 참된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해 바울이라는 놀라운 사도가 탄생한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눈에 있는 비늘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울의 눈에서 비늘을 벗겨내셨습니다. 그리고 바른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에 비늘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이래서 안 되고, 저 사람은 이래서 싫고.
나 자신에 대한 비늘도 있습니다. 나는 이래서 안 되고, 나는 이래서 못하고. 나는 이런 헌신은 하지 않는 사람이고.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눈에서 비늘을 벗기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비늘이 벗겨져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에 있는 비늘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우리들의 눈에 있는 비늘을 벗기시어, 바른 믿음 갖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