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물(2016년 2월 21일 주일설교)요11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3-04 18:08
조회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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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머 - 개의 장례식
어느 여자분이 울면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자식같이 기르던 개가 죽었는데, 장례식을 집례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개는 개라서 동물장례식은 치러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목사님이 거절을 했습니다.
이 여자분은 슬퍼하며...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군요... 제가 장례식을 마치고 만불을 헌금하려고 했는데... 개 장례식을 치러 주는 다른 교회를 찾아봐야 하겠네요...”
그러자 목사님 얼굴색이 바뀌며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아니 사모님. 그 개가 예수믿는 개라고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믿는 개는 장례식을 치러드립니다.”라고 했답니다.
개가 죽어도 이렇게 슬픈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얼마나 슬플까요? 오늘 한 장례식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3 사랑하는 자에게도 시험은 온다.

▶*군포의 성라자로의 마을
제가 중학교때 저희 담임선생님께서 학생들과 같이 봉사나가시던 기관이었습니다. 왜 나자로일까?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나오는 분이 바로 나사로입니다.
원래 그는 나병환자였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11:1 한 병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의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였다. 아멘.

▶*베다니라는 동네가 동일하게 나오고, 마리아도 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다니라는 동네는 예루살렘에서 1.7마일 떨어진 동네였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는 큰 차이가 있는 동네였습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성 밖의 동네였습니다. 성 밖에 있으면, 적들이 쳐들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동네는 버리는 동네인 겁니다. 주로 이런 동네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벧아니’라고 읽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벧’은 ‘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니는 ‘무화과’라는 뜻에서 가난한 사람, 가난한 동네를 의미하는 뜻으로 바뀝니다.
이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쫓겨난 사람들, 망해서 나온 사람들, 그리고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추방당해서 사는 버림받은 사람들의 동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버림받은 동네를 자주 방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 올라가시는 길에 이런 거룩하지 못한 마을을 들르면 안 됩니다. 7일동안, 성전에 갈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베다니를 즐겨 들르셨습니다.

*낮은 자의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낮은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러신 것처럼, 우리도 노숙인들을 섬기고, 버림받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11:3 그 누이들이 사람을 ㉠예수께로 보내서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 아멘.

*나사로가 다시 병에 들었습니다. 어떤 병인 지 알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고 나오는 데, 여기서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랑은 크게 3종류가 있습니다.
에로스 - 남여간의 육체적인 사랑
필리아 - 친구간의 우정
아가페 -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냐면, 아가페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셔도 고난은 옵니다.
고통은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도 고통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셔서 우리에게 고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뜻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고통은 예수님께 가지고 가야 해결이 된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괴롭고 힘겨운 일이 있을 수록, 주님을 찾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3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신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요단 세례터에 계셨습니다.
베다니에서 그곳까지는 약 30마일정도가 됩니다. 문제는 여기가 아주 높은 산지라는 사실입니다. 안 쉬고 걸어도 10시간이 걸립니다. 즉, 사람을 보내는데 하루가 걸리고, 즉시 오는데 하루가 걸린다는 사실입니다.

▶요11:6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앓는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그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르셨다. 아멘.

*게다가 이틀을 더 머물렀으니, 나사로가 죽어 버렸습니다.

▶요11:17 예수께서 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다. 아멘.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다?
정확한 계산이 나오죠. 나사로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낸 것이 하루, 예수님께서 2일을 머무셨고, 베다니에 오신 것이 하루입니다. 그러면 정확한 시간 4일이 나오죠.
즉,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고, 바로 나사로는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빨리 오셨어도, 나사로가 살아 있을 때는 오실 수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무슨 장례식을 이렇게 빨리합니까?
유대인들은 장례식을 바로 진행합니다. 너무 더워서 시신이 빨리 부패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바로 시신을 씻고 동굴에 묻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도 그랬죠. 돌아가시자 마자 바로 동굴에 시신을 묻습니다. 이게 1차 장례식입니다.
1년 뒤에 2차 장례식을 진행합니다. 가족묘지인 동굴에 1년 뒤에 가보면, 뼈만 남습니다. 그 뼈를 잘 모아서 돌로 된 작은 관에 모읍니다. 이게 두번째 장례식입니다. (눅 9:59) 제자의 부름.
그러니 나사로가 4일 동안 무덤에 있었다는 것은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 지났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완벽한 죽음

*무덤에 도착하니, 마리아와 마르다를 예수님께서 만나십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불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의 일을 도울 때는 몰랐던 문제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요11:32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멘.

*예수님! 왜 바로 오시지 않고,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떠나지 않으시고,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예수님을 위해서 애쓰고 수고 한 것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그렇게 주님의 일을 힘썼는데, 예수님은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유머. 목사와 장례식
지금도 목사가 장례식에 늦는 것은 용서가 안 되는 것을 알기에, 심지어 교통경찰도 목사라는 것과 장례식순서지를 보면, 어지간하면 티켓 안 주고 보내 줍니다.

▶요11:35 예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아멘.

▶*예수님께서 우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눈물은 3번 나옵니다. 예루살렘성에 올라가시면 한번 우셨고, 겟세마네동산에서 눈물로 기도하셨고, 지금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었고,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 사람의 증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의 의미?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살아 날 것을 모르셨나요?
아닙니다. 너무 잘 아셨고, 남들은 죽었다고 할 때에 예수님은 단 한번도 ‘죽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요11:11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아멘.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우셨을까요?
4일동안, 죽은 자기 오라버니 곁에서 눈물로 괴로워했을 두 자매를 생각하며 우신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실 계획이셨습니다. 그러나, 우셨습니다. 슬픈 것은 슬픈 것입니다. 그냥 고치면 바로 끝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죽음으로 4일동안 원망하며 괴로워한 두 자매의 마음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그 기적의 순간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참 힘든 세상입니다.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가장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힘듭니다. 여자들은 어떻습니까? 이 지역에 사는 여자분들은 나가서 돈 벌어야 삽니다. 들어오면, 또 집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와도 취직이 안 되는 암울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안한 미래,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

*여러분들의 어려운 사정들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그냥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다른 분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울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답없는 인간의 눈물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있는 눈물입니다.

*우리들의 말 못할 안타까운 눈물을 주님께서 보시고, 같이 우십니다. 힘내세요. 고통은 있어도, 옆에서 같이 우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 예수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고통을 간증으로 만들라.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습니다.
보통 이스라엘의 무덤은 땅이 아니라, 동굴입니다. 개인무덤이 아니라, 가족무덤입니다. 동굴문은 주로 큰 돌로 막아 놓습니다. 막아두지 않으면, 들짐승들이 시체를 먹어치우죠. 예수님께서는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시고, 무덤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시신을 보고 조문하려고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다른 일을 계획하셨습니다.

▶요11:43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외치시니, 아멘.

*큰 소리로!
나사로가 귀가 먹어서 그럴까요? 아니요. 동굴 밖에 있는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에게 들으라고, 동네사람들 들으라고 큰 소리로 소리를 치신 것입니다.

*나사로야!
저희 신학교 교수님이 퀴즈로 내신 문제입니다. 왜 나사로야! 라고 부르셨을까요? 나오너라... 라고 하면, 그 가족묘지 안에 있는 모든 죽은 사람들이 다 살아서 나오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사로야! 라고 딱 찍어서 불러주셨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주님의 능력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것이 살아 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멀쩡한 집에 왜 이런 고통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가정에 왜 이런 죽음의 아픔이 있어야 합니까? 그냥 안 아프고, 안 죽게 해주실 수는 없는겁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런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누가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싶겠습니까? 그냥 없으면 좋을 고통인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죽었다가 꼭 살아나야 합니까? 처음에 안 죽이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결과를 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요11:45 마리아에게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대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아멘.

▶*이 일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없었다면, 아마 이런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그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이 죽음에서 영생으로 바뀝니다. 그러면 우리는 당연히 주님을 증거하는 전도하는 선교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고통은 있지만, 의지할 주님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고통의 의미는 모르지만, 이 고통을 이기고 나면 나를 증인으로 쓰실 것을 믿기에 든든합니다.
나에게 있는 상처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십시오.

*나사로처럼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우시는 예수님으로 힘얻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