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로 돌아가자-애3:40(2016년 11월 27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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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16-11-2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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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애가


BC586년 이스라엘은 세계 최강대국인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그 슬픔의 순간을 예레미야는 눈물로 글을 씁니다. 그 글이 바로 오늘 성경인 애가입니다. 슬픔의 노래입니다.



*애가는


슬픔 중에 있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슬픔과 고통을 잘 이길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애가를 통하여, 우리의 슬픔을 이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 슬픔을 노래로 바꾸라.



▶*유대인들의 노래?


보통 슬픈 단조의 노래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 노래가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당한 고통이 너무나 크고 길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의 고통이라면, 히틀러에게 당한 고통일 것입니다.



*유대인의 능력?


유대인들은 자신의 슬픔을 노래로 바꾸어 부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슬픔을 노래로 바꿔서, 그 슬픔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슬픔을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 슬픔에 굴복하지는 않습니다.



▶시137: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아멘.



*지금 유대인들의 상황은 이런 상황입니다.


▶1, 2, 3차에 걸친 바벨론의 공격으로 마침내 유다는 멸망을 합니다. 약 4,600명 정도의 포로가 붙잡혀 가게 됩니다. 당시에는 남자만 수를 세었기때문에, 아마 4를 곱하면 15,000명 정도가 포로로 붙잡혀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강변에 앉아서,


시온, 즉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래를 지어서 불렀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애가 3장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화면을 보시겠습니까? 히브리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3장의 특징을 찾으셨나요? 3절씩 시작하는 말이 똑같습니다. 1~3절은 히브리어 알렙으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22개의 알파벳이 있으니, 3장은 총 몇절까지 있을까요? 3x22는? 구구단에 안 나온다구요? 우리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은 기적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66절이 끝이지요.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붙잡혀간 고통의 순간에,


예레미야는 이 고통을 노래로 바꾸었습니다. 이 노래는 찬송이 되고, 이 노래는 기도가 되어서 하나님께 올려졌습니다.



▶*기독교인은 고통을 슬픔으로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찬송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되었을 때, 기독교를 폐륜의 종교라고 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100년이 넘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기독교인이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마땅히 자식이 어머니의 장례식에 곡을 하는 것이 의무인데, 이 기독교인은 기독교식으로 장례식을 치르면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이 기독교인은 관가에 잡혀가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찬송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괴로움을 노래로 바꿀 수 있고, 이 찬양이 기도가 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처음에 선교사님들이 성경을 가르치면서 찬송가를 가르치는데, 그게 참 어려웠다고 합니다.


악보를 볼 줄 모르잖아요. 게다가 한국사람들의 음계는 다르죠? 궁상각치우. 5음계란 말입니다. 어떻게 7음계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요?


선교사님들이 먼저 부르고, 그 찬송을 교인들이 따라 불렀습니다.



*처음 교회를 나간 양반들이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니, 저 놈들은 어떻게 준비를 했기에, 곡조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 4부로 성가대가 찬양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시 100명이 모여서 찬양을 하면, 몇부 찬양으로 불렀을까요? 100부 찬양이 되었답니다.


다들 자기 맘대로 불렀데요.


그런데 그 찬양과 예배가 그렇게 은혜가 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나라 빼앗긴 서러움을 모아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왕을 잃어버린 백성들이 일본천황을 왕으로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습니다.



*어렵고 어려우나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하네


옷과 밥을 다 주고 좋은 것을 다 주네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하네



우리 기도 다 듣고 우리 주가 구하네


우리가 자나깨나 우리 주 돌아보네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하네



하늘에서 주재나 세상에서 괴로워


욕을 먹고 수심 중 변개할 것 없어도


어렵고 어려우나 우리 주가 구하네



*우리 삶에 괴롭고 어려운 일 가득합니다.


그때 우리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면 삽니다. 유대인들이 괴로움 중에, 그들의 알파벳으로 찬양을 만들어 부른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고통을 찬양으로 바꿔서 불러야 합니다.


오늘 집에 가시면서, 찬송부르면서 가시면 오늘 예배 성공입니다.



*담력테스트


예전에는 중고등부수련회를 가면, 무덤에 갔습니다. 기도원 옆에 무덤이 있는데, 전도사님이 아이에게 겁을 많이 줬습니다. 저 무덤에는 귀신이 나오는데, 귀신을 만나면,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벗은 형제여.’를 부르라고. 가르쳐줬습니다.


물론 아이가 후레쉬를 들고 무덤에 가는 동안, 선생님 중 하나가 하얀 소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에게 겁을 주려고 다가갔습니다.


아이가 너무 놀라서, 찬송가가 생각이 나지 않는거에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안 나더랍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바로 앞에 서 있는 귀신에게 이렇게 찬양을 했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귀신선생님이 웃겨서 뒤집어 졌대요.



▶*괴롭고 힘든 우리의 인생에서 찬송이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여러분들의 입가에 찬양이 끊이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2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예레미야 애가 3장에서는 어떻게 우리가 고통을 이겨야 하는 지, 그 내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애3:30 때리려는 사람에게 뺨을 대주고, 욕을 하거든 기꺼이 들어라. 아멘.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오른 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도 돌려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내 욕을 하거든, 그 욕을 피하지 말고, 제대로 들으라고 합니다.


욕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욕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먹을 욕을 안 먹으면 망합니다. 주인이 들을 욕을 피해다니면, 그 손님 다시 안 옵니다.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애3:33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아멘.



*망하라고 주는 시험이 아니라, 강해자리고 주는 훈련이다. 그게 하나님의 본심이다!



*예레미야는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고통을 훈련으로 여기면 그 고통은 더 이상 괴롭지 않습니다. 훈련은 망하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은 나 잘되라고 주시는 것이 훈련입니다.



▶애3:38 궂은 일도 좋은 일도, 가장 높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셔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 아멘.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나요?



*궂은 일도, 좋은 일도,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고통과 고난들입니다.


훈련받을 때, 우리는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 봐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멸망한 상황에서,


훈련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이 모든 것이 훈련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봤습니다.



*히틀러 - 궂은 일이 좋은 일로 변한다.


▶2차세계대전때, 6백만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히틀러에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유럽에 9백만명의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2/3이 학살을 당한 것입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역사에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죠. BC 586에 멸망한 이스라엘이 2500년 뒤에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게 히틀러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있기 전부터, 다시 이스라엘을 만들자. 라고 했을 때, 전세계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 집이 있고, 자기 비즈니스가 있는데, 어떻게 다 정리하고, 이스라엘에 가서 농사지으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2차세계대전에서 엄청난 학살을 당한 후에는, 유대인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언제 다시 히틀러같은 괴물이 나와서 우리들을 죽일 지 모른다. 우리끼리 뭉쳐야 한다.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서, 이스라엘로 모여들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히틀러의 학살 때문에 이스라엘국가가 탄생한 것입니다.


고통이 훈련이 되어, 유대인들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을 훈련으로 여기고 이기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애3:40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아멘.



*지나온 길들은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훈련받는 사람은, 훈련시키는 사람을 봐야 합니다.



*돌아가자. 슈브


회개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 우리의 인생의 훈련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개를 훈련시킬 때


▶저희 부대에 군견반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개들을 훈련시키는 곳이었습니다. 개를 어떻게 훈련시키나 보니까. 이렇게 훈련을 시킵니다. 먹을 것을 가지고 훈련시킵니다. 먹을 것을 개 앞에 두면, 개가 먹으려고 달려들죠. 그러면 안돼! 라고 하면서 밥통을 뺏습니다. 다시 밥통을 앞에 둡니다. 그러면 개가 달려들죠. 그러면 다시 안돼! 라고 소리칩니다. 몇번 이 일을 반복하면, 개가 훈련시키는 군인을 바라봅니다. 이게 되면,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훈련의 시작은 자기가 훈련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훈련시키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군견들은 군인 계급장을 볼 줄 안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계급이 더 높았습니다. 제가 가서 그 개에게 명령을 내려봤습니다. “앉아!”“일어서!”


개무시를 당했습니다. 제 말을 안 듣더라구요.


개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둘이 되면 안 된답니다. 무조건 한명만 명령을 내려야 말을 듣지, 두명의 명령을 들으면, 개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요.



*우리도 똑같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 한 주인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훈련시키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은 없습니다. 훈련이 제대로 된, 크리스찬을 만듭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 험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훈련받는다는 사실도 모르고, 훈련시키는 하나님을 보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고통을 훈련으로 여기면, 그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닙니다.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