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중보기도(02/19/2010금요기도회)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10-02-22 17:14
조회
2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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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14: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14: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겟세마네동산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깝습니다. 예루살렘의 건너편 감람산의 입구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을 기도의 장소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시간사용
해가 뜨면 사람들을 만나고, 해가 지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딱 한번 그 일이 깨지는 데,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밤새 재판을 받으십니다. 그 외에는 밤에는 항상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간은 균형잡힌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균형이 잡혀 있습니까?

●장사하는 시간만 많습니까?
공부하는 시간만 많습니까? 시간이 없다고 주님 만날 시간을 건너 뛰십니까? 균형잡힌 시간을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남아있으라고 부탁하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남아있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남아 있으라고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남아있으라고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정말 의지할 만한 그리고 기도를 부탁할 만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제자들은 따로 데리고 올라가십니다.

막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아멘.

●다른 제자들은 베야요가 부러웠을 것입니다.
모두가 가정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모든 것을 헌신했는데,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베야요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인간적인 고난이 너무 컸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너무 어려우셨습니다.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어짜피 말씀하신대로 살아나실 것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면서 두려워하셨다는 것은 예수님도 부활을 못 믿으셨다는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이 놀람과 슬픔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죽을 수 있다. 죽을 준비하고 살아가십니까?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것도 충격이지만, 더 큰 충격은 하나님께서 죽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충격은 너무나 예수님을 괴롭게 했습니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죽기 마련입니다. 저도 죽습니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언젠가는 받아들일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못 살던 사람이 망하면... 그렇게 삽니다. 잘 살다가 망하면... 정말 힘듭니다. 그런 차이입니다.

막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아멘.

●중보기도부탁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시네요. 정말 기막힌 장면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 너무 너무 큰 괴로움이었다. 신이 죽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했죠. 그말이 맞습니다. 예수님은 제대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2. 중보기도는 놀랍습니다. 그 효과는 주님께서도 인정하셨습니다. 어느 사람의 기도에 응답될 지 모릅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기도에도 큰 힘이 있습니다.

●신학교수님의 중보기도
신학교에 아주 훌륭한 교수님께서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기도원에 기도 많이 하시는 권사님이 계신데, 가서 기도받으시라고 했더니 이분이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내 병은 내가 잘 알고, 기도하려면 내가 하지 왜 다른 사람에게서 기도를 받습니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예수님. 돌아가시는 것은 예수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 아닌데, 주님 왜 우리에게 당신 기도를 시켜놓고 갑니까? 예수님께서 틀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중보기도의 효과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막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아멘.

●멀지 않은 거리로 떨어지셨습니다.
기도할 때 자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방해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멀지 않은 거리에 떨어지셨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방해가 될 때가 있습니다. 누가 조심해야 할까요? 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이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되는 한에서 해야지, 되지 않는 한에서 해달라는 것은 맞지 않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능력이 없습니까? 다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된다고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해달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는 이런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뜻은 있었지만, 이거 안 이뤄지면, 나 교회 안나온다는 마음이 아니라, 이게 주님의 뜻에 맞으면 해주시고, 아니면, 주님의 뜻이 이뤄지리이다...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멘.

●정말 다급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
‘아빠 아버지’입니다. 평소에 이러지 않으셨어요. 이런 말을 쓰시지 않으셨어요. 유일하게 사용하시는 곳이 이곳입니다.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께 통사정을 하시는 것입니다.

●잔을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베스트다.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래도 내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실 수도 있습니다. 더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내 뜻을 바꾸기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십니다.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아멘.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시간은?
이렇게 한시간을 기도하셨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본 받으십시오. 내가 한시간은 앉으면 기도하겠다. 기도시간의 목표를 세우십시오. 기도는 질도 질이지만, 양도 양입니다.

●배신 안 한다고 맹세한 베드로.
벌써 배신할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의 의지는 약합니다.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아멘.

●육신이 이끄는 삶
영혼이 이끄는 삶

●시험에 든다.
깨어 있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은 항상 우리를 유혹합니다. 시험드신 분들 계십니까? 뭐가 부족해서 든 겁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니까. 깨어나셔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미운 사람이 보이고, 싫은 사람이 상처를 줍니다. 기도하면, 모든 사람이 불쌍해 보입니다.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비결입니다.

막14: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아멘.

●한 말씀가지고 또 하신다.
예수님의 기도도 그러셨습니다. 반복되는 기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거기에 진심이 있으면, 반복하면, 더 간절한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막14: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아멘.

●또 잡니다.
걸렸습니다. 이제는 할 말도 없습니다. 제자들도 피곤합니다. 밤인데 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고독한 지도자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마음을 이렇게 몰라줍니다. 여러분은 그런 제자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한 마음을 이해하시고, 지도자의 고통을 알고, 그 고통에 같이 참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