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감사(11/18/2012주일예배)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12-11-19 16:53
조회
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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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감사 - 사행시
평생 불평하며 살았다
생전 감사할 줄 몰랐다
감사할 줄 모르는 나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2008년부터 계속되는 불황의 연속입니다.
정말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며 살아야 되는 2012년 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감사를 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제목대로 ‘평생감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3 작은 일에 감사하라.

●작은 일에 감사할 수 있어야 큰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훈련입니다.

●아이들의 병
큰 아들은 아기때 폐렴으로 두번 병원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100일 때, 21일 동안 가와사키로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그리고 아토피가 올라와서, 밤마다 자기 몸을 자기가 긁어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교회 기도실에 앉아서 울면서 기도했던 것이, 작은 아들 돌잔치 제대로 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미국에 와서, 정말 감사한 것은, 작은 아들이 아토피 약을 끊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미국와서 출세한 목사입니다.

●욕심이 감사를 막습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것 말고 욕심이 없다고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그럴까요? 지금은 다릅니다. 욕심이 있어요. 말씀도 잘 봐야하고, 예배도 잘 드려야 하고, 봉사도 잘 해야한다고 가르칩니다. 욕심이 커졌습니다. 만족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크면 아마 이럴 질도 모릅니다.
“사지가 멀쩡한 놈이 그러고 사냐?”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게 바뀔까요? 바뀝니다. 안 그런가요?

●욕심이 감사를 막습니다.

●영락교회 권사님
항상 이맘때 쯤이면, 교회 목사님들과 전도사님을 모아서 식사를 대접하셨습니다. 그냥 간단한 국밥정도 대접하셨습니다. 그리고 감 한개, 사과 한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사하면서 살라는 부탁이셨습니다. 교역자 모두가 그 식사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목사님들만 모인 자리입니다. 그 자리도 불평이 있습니다.
뭐 이런 걸가지고 바쁜 사람을 부르냐? 감한개 사과 한개? 장난치냐? 우리가 목사지 아동부 아이들이냐?

●감사는 찾아야 찾아집니다.

●1860년 9월 8일 미쉬간 호수
시카고 게렛 신학교를 다니던 에드워드 스펜서라는 신학생(25세)이 있었습니다.
밤중에 친구의 고함소리에 호숫가로 나가보니, 큰 배 한척이 바위에 부딛혀서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38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스펜서는 고등학교시절 수영선수였습니다. 쉴새없이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16명을 구했는데, 한명이 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한명을 구하러 들어갔고, 간신히 구했습니다. 사람의 체력을 넘는 구조로, 스펜서는 병이 듭니다. 그리고 7년 32살의 나이로 하늘나라에 가게 되죠. 이 분이 죽기 전에 했던 말입니다.
“내가 구조한 사람은 17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 사람은 그 중에 딱 한명 여자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7년동안 크리스마스 때 감사의 카드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게 저에게 가장 큰 위로입니다.”

●정말 감사하지 않네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감사제목을 적어서 추수감사헌금 봉투에 적어서 내시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감사는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낸 돈보다, 여러분의 감사제목을 더 귀하게 받으실 것입니다.

●감사는 찾아야 합니다.
감사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면 더 받습니다. 맞습니까?

눅17: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7: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17: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아멘.

●감사하면 더 받습니다.
갈 수록 더 귀한 것을 받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해서, 더 큰 것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3 가시에 감사하라.

고린도후서 2 Corinthians 12:7 그러므로 내가 교만하게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으로 나를 치셔서 나로 하여금 교만해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멘.

●고린도후서 12장은 바울의 자랑장입니다.
생전 자기 자랑이라곤 하지 않던 바울이 자기 자랑으로 한장을 씁니다. 그런데 그 자랑 중에 하나가 위의 자랑입니다.

●자신의 가시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육신의 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학자들이 추측하기에는 눈에서 계속 눈물이 나는 안질, 혹은 간질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죽은 사람을 살린 사람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죽은 사람 살린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건 예수님께서나 하시는 일 아닙니까? 그걸 바울이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 사실 하나는. 자신은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고쳐달라고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이게 자기를 위한 것입니까? 자시가 설교하다가 간질로 뒤집어지면, 어떻게 복음을 전합니까? 그래서 간구했는데, 됬다. 이게 너에게 필요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좌절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좌절을 넘어섭니다. 그게 왜 필요한가를 생각합니다. 답은 무엇이었나요? 교만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 열정으로 시작하고, 성령의 능력을 봅니다. 그런다가 잘못되는 경우를 봅니다. 그분들의 말 속에는 하나님이 사라지고, 자기가 주인을 차지합니다.
“내가 이 교회를 이렇게 부흥시켰다.”
“내가 기도해서 병을 고쳤다.”- 바울은 그렇게 못하죠. 자기에게 병이 있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할 것없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 쓰시는 도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어서 쓰시는 도구가 있습니다.
기술자가 자주 쓰는 연장이 있나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주 쓰는 연장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연장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안 됩니다. 잘난 연장은 되지 말라.
그래서 망하는 경우, 이단으로 가는 경우를 참 많이 봅니다. 은퇴를 아주 비참하게 하는 분들도 봤습니다.

●바울은 그래서 자랑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겠나?
이 고통은 나의 잘못도 아니요, 부모의 잘못도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자랑합니다.

●욥의 입에서 감사가 떠나버립니다.
그가 복받았을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복이 떠나고 그에게 고통이 왔을 때, 그는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욥기 마지막 장인 42장에 하나님께서 두배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42장 어디에도 욥의 감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욥은 복에 감사했지만, 고통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가시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는 이런 가시가 없습니까? 내 삶에 왜 이런 가시가 붙어있지? 떼어 낼 수도 없는 이 고통의 가시를 어떻게 하지? 말도 못하고 괴로워하고 계십니까? 욥같이 믿지 마세요. 바울같이 믿으세요. 필요하니까 주셨겠지. 나를 겸손하게 하시려고 주셨겠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사탄과 내기를 하시면서 욥의 시험이 시작된 것을 알고 계시죠?
그 시험의 핵심은 무엇이었나요?
사탄의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욥2:5 이제라도 주님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아멘.

●욥은 자기 건강을 잃고서 감사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이 아픈 것, 죽도록 아픈 것에는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나긴 욥의 불평이 시작됩니다.

●대조되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하박국 1:2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 하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아멘.

●하나님은 어디에 살아계셔서, 세상에 이런 일들이 벌어집니까?
왜 세상에 정의는 없고, 하나님믿는 사람이 복받는 것이 아니라, 약게 약게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만 복받고 사는 것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선지자인 자신도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야 합니까?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정말 답을 찾을 수가 없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지금 이 땅에서 잠시동안은 악인들이 잘 될지라도, 그 사람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서, 저 천국의 영원한 삶에 들어갈 수가 없다. 세상 길게 볼 일이다. 지금의 괴로움에 무릎을 꿇지 말라.

하박국3:17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아멘.

●그리고 하박국이 감사의 노래를 지어서 부릅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고
올리브나무에 딸 것이 없고
밭에는 흉년이 들어서 완전히 망했고
외양간의 소는 예전에 다 죽어서 악취가 나고
방세를 못내서 쫓겨나게 생겼고,
빌도 제대로 못내서, collection 회사에서 경고장 날아와도.
무엇으로 감사한다고 합니까?

●하나님 한분만으로.
이렇게 고만하고 불평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의지할 하나님께시니 감사하지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가 의지할 하나님께시니... 나는 감사합니다. 이게 바뀔까요?
이 조건이 바뀔까요?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이게 범사에 감사입니다. 이러면 평생감사할 수 있지요.

●손양원목사님의 감사.
1948년에 발생한 여순반란사건으로 미국유학가려고 준비했던 두 아들이, 예수쟁이에 미국가려고 한다는 이유로 공산당에게 붙잡혀 가서 죽습니다. 아들을 죽인 사람이 그 또래의 동네 학생이었습니다.
국방군에 의해서 붙잡힌 이 공산당학생을 사형장으로 데리고 가는데, 손목사님이 가서 그 학생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이 아이를 죽이면 내 아들들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됩니다", "이 아이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 사람 되게 하겠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손양원목사님이 감사헌금을 하셨습니다. 그 감사헌금 봉투가 순천 애양원에 있습니다.
'두 아들의 순교를 감사하며, 1만원, 손양원.'
당시 손목사님의 월급은 한달에 80원이었습니다. 아들 유학보내려고 모아논 돈을 모두 터어서 감사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안재선이라는 양아들을 얻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지금 목사님이 되어 있습니다. 안경선목사님입니다.

●왜 감사했을까요?
욥은 자식 죽은 앞에서 감사는 못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이 더 하신 거에요. 죽은 두 아들 앞에서 감사를 했습니다. 정말 감사해서 감사했을까요? 너무 괴로워서 감사했을까요?
너무 괴로워서 감사했죠? 괴로우면 감사거리를 찾아보세요. 감사는 내가 살려고 하는 겁니다. 감사거리를 찾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감사거리를 찾는 것입니다.

●가와가미 기이치의 감사
그는 일본 해군장교였습니다. 1945년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전쟁을 진 후, 일본국민들은 죄절감에 빠져있었고, 자기같은 군인들은 다른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군인도 아니었습니다. 미군들이 일본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요. 전쟁에서 얻은 마음의 병과 사람들의 손가락질때문에, 서서히 몸이 마비되어서, 온 몸을 쓸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신과의사인 후치다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 환자에게 이렇게 처방을 했습니다. 다른 어떤 약도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몸을 못 움직이니, 입이라도 움직이십시오. 그리고 “감사합니다.”를 하루에 천번씩 반복하세요.
안 움직이는 입으로 하루에 천번을 반복했습니다. 서서히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풀리자, 몸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몸이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감사의 기적입니다.

●감사해서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감사는 찾아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어로 땡큐, 중국어 쒜쒜, 일본어로 아리가또라고 하지요.
감사하면 바뀝니다. 우리의 삶이 바뀝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감사할 수 없는 나의 상황 속에서 평생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