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예배(11/04/2012주일예배)

작성자
김동원목사
작성일
2012-11-06 14:49
조회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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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무엇일까요?
예배는 어떤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바를까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계십니까?
마음 속에 근심이 있습니까? 걱정거리가 있어서 집중할 수가 없습니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오늘은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전하실까? 기대가 있으십니까?

●예배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사진 한장
인도의 한 고아원의 아이입니다. 자기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렇게라도 그림 그리고 들어가서 엄마를 느끼고 싶었나봅니다.

●이게 예배의 마음입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나님 품에 안기고 싶은 그 마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 마음이 있는 예배를 드리라.

●유머 - 골프집사
골프치는 것이 좋아서 교회를 못나오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골프장으로 심방을 가셨습니다. 교회를 나오시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예배에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아닙니까? 저는 예배당에 있어도 마음이 골프장에 가 있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제 몸은 골프장에 있고, 제 마음을 교회로 보내겠습니다. 제 마음은 항상 주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 때 나온 질문입니다.
어느 분이 교회다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입어서, 교회를 안 나오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목사님 클릭해서 예배드리고, 돈은 온라인으로 헌금합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닙니까? 훨씬 훌륭한 목사님에게 설교 듣습니다.
- 뭐가 잘못되었죠? 이분에게는 예배의 기본정신인 섬김이 없습니다. 이분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으로 예배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의 기본은 드림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영어로 뭐죠? 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worship은 'worth"(가치)와 "ship"(신분)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분에게 드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service는 말 그대로 섬김입니다.
예배는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로 보면 '샤카(shachah)'와 '아바드(abadh)'
샤카는 ‘엎드려 절하다 또는 경배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worship이 여기에서 온 말입니다.
아바드는 “섬기다 또는 봉사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service의 의미입니다.

●예배의 첫시작은 제사였습니다.
우리가 제사지내고 살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사를 보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인류 첫 번째 예배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예배부터 뭔가 잘 못되었습니다. 그만큼 예배를 바르게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첫 예배를 보면, 우리가 무엇을 잘못할 지 알 수가 있습니다.

창4:2 하와는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고,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4:3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4:4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다. 아멘.

●직업이 나뉘어 졌습니다.
형님인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사회가 분화된다고 하죠. 사회가 발전하면, 이렇게 자기 하는 일이 나뉘게 됩니다.

●가인은 자기가 농사한 곡식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아벨은 자기가 키운 양새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예배였습니다.

●예배에 중요한 것은 제물입니다.
제물이 있어야 예배가 됩니다. 요즘 예배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에는 설교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사람들이 가져온 제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태워드리는 일종의 백정이었습니다. 제물을 태우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물을 태우는 그것으로 예배자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제물에 담긴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리 비싼 제물을 갖다 드려도, 그 제물에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정말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불쌍한 동물 한 마리만 죽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상한 심령입니다. 제물이 아닙니다. 그 제물에 마음이 없으면, 그 제물은 쓸데없는 것이 됩니다.

시편 Psalm 51: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아멘.

●다윗의 고백입니다.
예배 전문가입니다. 이분의 말씀에 의하면, 찢겨진 마음 그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창4:4~5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 아멘.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고기를 좋아하시나요? 곡식은 싫어하시나요? 하나님도 식성이 있으신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방법은 훨씬 뒤에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러니 가인과 아벨의 예배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사 중에는 소제라는 제사가 있어서, 곡식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벨이 드린 것은 양의 첫 새끼였습니다. 자기가 양을 키우면서 얻었던 첫번째, 소중한 새끼였습니다. 자기가 목자생활을 하면서 고생고생해서 받았던 첫번째 새끼였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첫번째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아벨은 그 정성으로 드렸고,
가인은 그냥 드렸다고 합니다. 그게 달랐습니다. 가인이 드린 것은 첫 번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귀하게 거두어 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뒤의 가인의 반응을 보시면, 가인의 제물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제물에 실린 여러분들의 마음입니다. 오늘 어떤 제물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고아원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는 그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마음은 찢어진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 바른 예배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2. 회개가 있는 예배를 드리라.

●유머 - 예배가 싫어서 도망간 아이
주일 아침, 미국 유타주의 한 시골마을이 갑자기 시끄러워졌습니다. 경찰차가 출동해서 어느 차 한대를 추격했습니다. 이 차는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차였습니다. 음주운전차량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그 차는 7살짜리 어린 아이가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자기 집에 차를 세우고 도망을 가다가 붙잡혔습니다. 왜 그랬냐고 하니...
“너무 더워서 예배가기가 싫었어요. 집에서 도망치려다가 그만...”
- 우리 마음에 있는 죄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싶은 죄입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멀어집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죄를 지은 가인의 모습이 어땠습니까?

창4:6 그래서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 아멘.

●가인의 얼굴빛이 달라졌습니다.
감히 하나님께 대들 수는 없었지만, 불편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비교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비교가 불행을 만듭니다. 가인은 자신의 잘못과 동생의 잘됨을 비교했습니다.
하나님은 비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된 예배를 받으셨고, 잘 안된 예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교를 합니다.

●사람들은 비교를 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개성있는 모습을 주셨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을 보세요. 너무 오묘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참 오묘하게 생기셨군요!)
그러나 사람들은 비교를 합니다. 그래서 불행해 집니다. 강남에 가면,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그렇게 많대요. 강남스타일이래요.
“어머니 날 나으셨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바뀌기를 바라셨습니다.
예배에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
예배는 나를 바꾸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운 예배의 중심은 나입니다.
내가 바르게 서면 어떤 예배도 은혜가 됩니다. 내가 바르게 서지 않으면 어떤 예배도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바뀌어야 바른 예배가 됩니다.

●첫번째 질문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네가 화내는 것은 옳지 않다. 네 예배가 잘못되지 않았니, 네 예배가 바뀌어야지 누구에게 분을 내느냐? 네 동생이 잘 한 것에 분을 내는 것이냐? 내가 네 제사를 무조건 받아야 하냐? 누가 하나님이냐?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가르치기 위해서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주셨습니다.

창4: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아멘.

●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너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죄를 멀리해라. 그게 예배의 참된 마음이다. 예배는 죄 속에 있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듣고 죄를 멀리할 수 있는 용기갖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때 죄를 끊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서 회개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길을 가지 말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부르십니다. 그 기회를 잡으세요.

●가인은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가인은 그 죄를 더 키웁니다.
동생과 더 비교했고,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내가 바뀌기 보다는 환경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크리스찬은 내가 바뀌어서 환경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반대로 하지 마세요. 환경을 바꿔서 내가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창4:8 가인이 아우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 들로 나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아멘.

●가인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잘못된 내 예배를 바꾸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세상에 사람은 둘, 내 동생과 나 밖에 없다. 동생을 죽이면, 사람은 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내 예배를 받아야 한다.”

●최초의 형제들이었습니다.
형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비교했기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꾸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창4:9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아멘.

●이 질문이 큰 은혜가 됩니다.
아벨 죽은 것 하나님께서 모르시죠?
벌써 아세요. 아벨이 죽은 것 너무 잘 알고 계셔요. 그리고 슬퍼하고 계십니다. 아벨의 영혼이 벌써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치미를 뚝 떼고 물어보십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이게 몰라서 물어보는 질문이 아닙니다. 가인을 사랑하시고, 가인을 배려하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물어볼 때, 얼른 회개하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두번째 기회입니다.
첫번째 죄를 멀리하라고 기회를 주시고,
두번째 사람을 죽인 뒤에 그 죄를 고하고 회개하기를 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 회개의 기회를 걷어 차 버렸습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가인은 동생을 죽인 벌로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영원히 도망자로 살게 됩니다.

●예배는 우리를 회개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가인에게 두번이나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음성들려주십니다.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그 길이 아니라고, 돌아오라고, 죄를 멀리하라고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가인은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배에 성공하고 있습니까? 이 예배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셨고, 얼마나 많은 섬김을 하셨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변하셨나요?
지금 드리는 이 예배는 여러분들에게 성공한 예배입니까? 아니면 오늘도 그냥 앉아서 한 시간을 보내는 실패한 예배입니까?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바꾸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바로 보세요. 가인에게 조언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말씀하십니다.
“죄의 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바른 길로 걸어가라고...”

●내가 바뀌는 아름다운 예배, 회개의 눈물이 있는 아름다운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