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1월 22일) 서기남목사님과 간단한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서 올려드립니다.
기자: 목사님, 본인의 소개부탁드립니다.
서 목사: 안녕하십니까? 서기남 목사입니다. 1957년 4월 14일 생입니다. 충청도 보은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친 고향이 서울이십니다. 아버님은 마포 분이시고, 어머님은 제기동 분이시지요. 아버님께서 공무원이셨던 관계로 보은 에서 속리산의 정기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자라기는 강원도 태백 황지 라는 탄광촌에서 자랐습니다. 양가 모두 믿는 집안으로 친가는 할아버지께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저희 대에 많은 형제들이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기자: 가족 소개를 좀 해주십시오.
서 목사: 가족은 아내와 아들(바름이Brian)가 있습니다. 아들은 지금 UC Irvine 에서 Biology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학교에 갈 때는 의사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생화학을 공부하면서 의사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다른 과로 옮기는 일을 매우 심각하게 고려하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New Song 교회에 출석하며 믿음 생활을 잘 하고 있답니다. 요즘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서 세계 곳곳에 있는 옛날 사진기들을 수집하면서 취미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사모는 모든 교우들이 잘 아시는 대로 저와 저의 목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기자: 어떻게 목사님이 되셨나요?
서 목사: 어릴 적 꿈이 군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감리교 목사이신 오촌 아저씨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사실, 신학대학 들어간 후 남들처럼 적지 않은 갈등도 있었습니다. 제가 아저씨의 도저을 받고 기도를 하였을 때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갈등하나 하고, 갈등을 멈추기 위해 휴학을 하였고,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한얼산 기도원에 갔습니다. 그때 다시 내려가 신학교로 가라는 응답을 들은 후 복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신학대학, 신학대학원에 다니면서 교회(국일교회, 한성교회)에서 훌륭하신 목사님들의 사랑과 훈련을 받았고, 울산 노회에 소속된 평강 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기자: 어떻게 미국에 오시게 되셨나요?
서 목사: 미국에 오게 된 것은 커다란 교통 사고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한 교통사고로, 제가 섬기던 평강 교회의 심각하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고, 저는 미국으로 와서 공부도 조금 더 하고, 미국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공부를 조금 더 한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 교회를 섬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있습니다.
기자: 우리교회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서 목사: 다른 목사님들은 처음 몇 년간은 신혼 부부와 같다고 하는데 저는 많이 다르더군요. 사실 10년 전의 목회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노회 총무 목사님께서 하셨던 충고도 생각났고, 전임 목사님들이 오랫동안 목회를 못하시고 단임 하셨던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정직하게 제가 10년에 이르는 지금까지 목회를 할 수 있었던 비밀은 평신도 제자훈련 과정 때문입니다. 목회자 CAL 세미나를 받고 무척 곤경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시작할 수 있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작할 수 방법을 알려 주시더군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법대로 하여서 당회에서 정식으로 제자훈련하는 일을 결정하였고, 제자훈련을 합법적으로 교회의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 제자훈련을 하다가 힘드셨던 일은 없으셨나요?
서 목사: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교인들이 교회 중심으로 변하여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 훈련받는 분들까지도 눌러 앉아서 훈련을 포기하려고 할 그 시점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더군요. 한번은 제 얼굴이 구안와사가 와서 입이 돌아갔습니다. 돌아간 그 얼굴을 갖고 설교는 못해도 제자훈련만은 열심히 하였습니다. 아직도 제 얼굴의 오른쪽은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 훈련 열심히 하라고 하신 저의 '스티그마'입니다. 영광의 흔적이지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나 그래도 훈련 9년에 이르는 오늘까지 꾸준히 진행하여 오고 있습니다.
또 한번의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주로 제 몸이 터지는 일입니다. 훈련을 마쳤으니까 사역을 맡겨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훈련을 받은 분들인데도 사역을 맡는 일에 대하여 갈등들이 많더군요. 특히 구역 예배를 다락방 모임으로 만들어서 매 주일 진행하여야 하겠는데 안 하시겠다 고들 하시더군요. 자신들은 졸업하는 오늘을 기대하며 참고 왔는데 다른 일을 또 해야 합니까 하면서 안 하겠다고 주장하시더군요. 훈련이 잘못되었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때 저의 맹장이 배 안에서 터졌습니다. 복막이 되었죠. 그래서 병원에 3주간 있었습니다. 그때를 기회로 삼아서 평신도 인도자들을 매주 병원으로 모셔서 인도자들 모임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다락방을 무난히 이끌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까지 아무 탈없이 다락방을 매주 은혜 가운데에서 진행하여 오고 있습니다. 다락방 모임이 잘 진행되니까 주중 금요 예배도 정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새벽기도 2년째를 맡고 있는데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새벽 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내용이니까 얼마 안 있으면 정착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한말씀해주십시오.
서 목사: 올해가 은혜 장로교회에서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교우들의 도움이시지요. 이제 저희 교회는 외양적으로 제자 훈련하는 교회로 공히 알려졌습니다. 알려지기만 하였지 혹 그 내용에 개인들의 믿음이 공허하다면 문제가 심각하겠다는 진단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2006년은 믿음의 뿌리를 깊게 내려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해'로 정하였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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