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중언부언

2022.04.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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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청년부회장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청년부담당목사님을 모시고 충북 진천에 있는 교회기도원에 여름수련회를 갔습니다. 저는 예배 중에 찬양팀인도를 했습니다. 찬양을 마치고, 설교시간이 되었고, 목사님께서는 설교 전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준비하신 설교 원고를 펴시면서,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셨고, 강대상을 정리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눈을 뜨고, 기도하시면서 하고 계셨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목사님의 기도는 너무나 잘 준비되었고, 은혜가 넘치는 기도였습니다. 저 혼자 눈을 뜨고 그 광경을 보고 있었고,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역시, 저 정도는 되어야 목사를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본인의 진심도 없이, 입으로 아무리 아름다운 기도를 한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기뻐하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기도를 비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녔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장과 시장에서 아름다운 말들로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목표는 기도하지 않는 대부분의 백성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보다, 이 기도를 옆에 듣는 백성들의 이목에 더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는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며칠 전, 뉴욕에 있는 큰 아들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주일에 청년부헌신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대표기도를 맡았고, 대표기도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아빠찬스를 쓰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표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어떤 기도의 말들이 청년부헌신예배 대표기도에 적당한 지를 알려줬습니다. 큰 아들은 제가 알려준 기도의 말들을 듣고, 그 아름다운 말들에 감탄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들은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25년 전 청년부담당목사님의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알려준 기도가 바로 중언부언의 기도였습니다. 형식과 말은 아름답지만, 진심이 없는 기도입니다. 진심은 목사가 가르칠 수 없습니다. 진심은 스스로 담아야 합니다.

 

기도에는 분명한 형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입니다. 진심이 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진심이 있는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에는 이 ‘진심’이 있나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