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 차별
한국에는 유독 여자대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조선시대의 교육관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여자가 왜 공부를 하느냐”, “글을 배우면 버릇이 없어진다”, “집안일은 어머니에게 배우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딸이 글을 배우면 시집을 못 간다는 말까지 있었고, 이로 인해 여성 교육의 문은 매우 좁게 닫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여자학교를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들과 함께 공부시키는 방식으로는 부모들이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만을 위한 교육기관이 필요했고, 그것이 오늘날 여자대학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1886년, 스크랜튼 선교사가 이화학당을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한국 여성 교육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학교에는 “학생은 결혼할 수 없다”는 학칙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여학생들이 중도에 자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자가 공부하면 시집을 못 간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나이에 결혼을 시키는 조혼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학업을 보호하기 위해 이런 규정을 두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차이를 근거로 차별을 만들어 왔습니다. 동양인과 서양인, 흑인과 백인의 차이가 인종차별로 이어졌던 것처럼, 성별의 차이도 불평등으로 굳어져 왔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여성도 장로가 될 수 있고 목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왔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도 여성 장로님이 계시고, 노회 안에도 여성 목사님들이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가족 간의 편애나 문화적 차별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 속에 습관적인 차별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차별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 질서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공평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