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보다 소중한 화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11-05 17: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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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골 3:13).” 아멘.

살다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불만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가정에서 가족 간에, 교회에서 교인들 사이에 불화의 씨앗이 자라납니다. '맨날 일 하는 사람만 하고, 맨날 참는 사람만 참는다'는 억울함이 마음속에 응어리집니다.

서로 용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 앞에서 '서로 용서하라'는 말은 너무나 무겁게 다가옵니다. 왜 늘 내가 손해 봐야 하는 것일까요?

사탄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속삭입니다. "네가 손해보는 거라고, 네가 억울한 거라고." 사탄의 이야기는 늘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이간질시켜 공동체를 깨뜨리고 싸우게 만드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용서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죽을 죄인인 우리들이 주님의 은혜로 먼저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우리의 예배보다 화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보다 용서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전에,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는 용서가 선택이 아닌 의무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주인에게서 막대한 빚을 탕감받은 종이, 겨우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주인은 분노하여 그 종을 다시 감옥에 넣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 6:12).”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는 행위는 하나님께 우리의 용서를 구하는 크레딧이 되는 것입니다. 용서받은 자로서 용서하는 것은 특권이요, 의무입니다.

용서만이 우리 영혼과 공동체가 살길입니다.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고,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그 사랑으로 피차 용서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5년 10월 31일 금요기도회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