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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마음 속에 개를 두마리 키운다고 합니다. 한 마리는 '선입견'이고 또 한 마리는 '편견'이라고 합니다. 이 두 마리 개때문에 사람이 개처럼 변한다고 합니다. 경험이 쌓일 수록 선입견은 더 깊어집니다. '내가 만난 어느 지역사람들은 어떤 성격이었다.' '내가 만난 어떤 나라의 사람은 이런 성격이었다.' 자신의 선입견이 진리인 양 착각하며 삽니다.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편식하는 아이들도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입견을 갖고 삽니다. 그런데 그 선입견이 나를 제한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무한한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심판과 복수의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성품 중 일부입니다. 전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는 선입견입니다.

우리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이런 일은 못 하시지.' '하나님도 저런 사람은 바꿀 수가 없어.' 스스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면 응답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안 믿는 것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까요?

 

둘째,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내가 같이 사는 가족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내 남편은 절대 바뀌지 않아. 하나님도 그 사람은 못 바꿀거야.' '너 그럴 줄 알았다. 네가 하는 일이 늘 그 모양이지.'

다른 사람을 향한 선입견이 그 사람에게 낙인이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 선입견에 맞게 살아 버리게 됩니다.

 

셋째, 우리는 나 자신에게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것 못 해.' '나는 그런 일은 안 해.' 스스로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면서 삽니다.

어제의 나 자신이 오늘의 나 자신을 제한합니다. 어제의 삶을 가지고, 오늘과 내일의 삶을 제한합니다. 스스로의 선입견이 스스로를 제한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선입견이 가득한 나다나엘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서,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라고 선언해 버리죠.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선입견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바돌로매와 나다나엘은 같은 사람의 두 이름입니다.)

 

선입견을 깨는 것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새해에 큰 변화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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