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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김길자1934년마산시상남동통제부

2008.12.29 20:49

최천해 조회 수:8777

저는 한국인천에서 살고있는 최천해라고 합니다. 45세이며
두아이의 아빠입니다.

저는 70,80년대에 청소년시절을 보냈읍니다. 그때는 대다수가 가난했고
비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온 시절이었읍니다.

어쩌다 김포공항으로 이어지는 공항로에 가게될때면  나의 가슴은
설명하기 힘든 설레임으로 들뜨곤 하였읍니다.
김포공항은 희망없는  아득한 현재에 매여 있는 내가 빠져나와 천국으로 갈수있는
유일한 문처럼 생각되었읍니다.
그렇게 나의 80년대는  누구도 날 끌어 당겨줄수 없는 막연한 아메리칸 드림으로
시작되었읍니다.

2000년 초반 태어나서 처음으로 , 그렇게 열망하던 미국행을 이루게 되었읍니다.
비록 출장으로 가는 거였지만 그열락의 땅을 체험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목적지는 플로리다의 올랜도였으나 되돌아 오는 길에 한인타운이 있는 LA에
들르리라 마음먹고 있었읍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LA의 날씨는 제고향 진해와 비슷했읍니다.
한인타운 부근에 있는 콘도식 호텔에서 먹은 김치찌게는 그것이 원조가
서울이 아니라 LA라고 생각될 정도였읍니다. 올랜도에서 기름기에 지친
내위장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오후의 타운의 모습은 조용했고 아수라같은 서울에 익숙한 내게 타운은
적막하기까지 했읍니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쓸쓸한 스페니쉬들이 저의 렌트카 차창너머로 스쳐지나갔었습니다.

LA에서 3일을 머무르는동안 비버리힐 산동네,로데오거리,헐리우드거리들을
기웃거렸읍니다.
마지막날 라스베가스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국도에서 과속때문에  경찰에게
걸렸지만 저의 어설픈 영어와 쏘리를 20번도 넘게 연발한 덕분이었는지 경찰은
딱지없이 아량을 베풀었습니다(한인 렌트카 회사에 이얘기를 했더니 억세게
운좋았다고 하더군요,딱지가 200불은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를 키웠던 어머니가 친모가 아니며 생모는 70년대 도미하여 미국에 살고있다는
얘기를 아버지에게 작년에 들었읍니다. 양어머니는 20년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작년에 작고하셨습니다.
아마도 저의 아메리칸 드림은 막연한 동경은 아니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그리움과 간절함이 파도를 넘고 산을 넘어 제게 전해져 온것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습니다.
어린시절 어느 여름밤 진해역 광장앞 가로등에 모인 매미를 잡아 손수건에 싸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눈길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졌던 곳은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였습니다.
창을 열면 한강이 바로  보였읍니다. 1970년 겨울 이었을 겁니다.
썰매 스케이트를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창문에 매달린 내게 "스케이트 사줄까"
라고 말하던 분이 저의어머니인줄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제어머니의 이름은 '김길자' 이며 1934년생 입니다, 고향은 경남마산시 상남동,
마산여중을 다녔고 1954년부터 진해통제부에서 일했읍니다.
지금 살아계시면 75세가량 되었을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 최천해 올림
이메일 saga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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